2025 CCPP 기획의도

2025. 3. 18. 22:07

ⓒChris Jordan, Ecstatic Desolation_CormPier09

 

바다와 땅, 숲과 하늘의 경계에서 신비로운 색들이 피어난다. 끝없이 넓은 바다, 순백으로 둘러싸인 빙하, 눈부시게 푸른 야생의 숲, 아름다운 태고의 자연 속에 평화로이 머무는 상상을 해본다. 물리적 시간과 세상의 경계가 사라진 그곳에선 오로지 자연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 인간의 시간은 그 속도감을 아예 잃은 듯하다. 자연이 보내오는 간결하고 평온한 리듬이 우리를 치유의 감각으로 이끈다. 멀어졌던 지구와 더 깊은 관계 맺음을 위한 성찰의 시간, 우리에겐 지금 그런 고요의 시간이 간절하다.

 

기후 위기 대응은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이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2025년이 중대한 변곡점,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올해가 2030년과 2050년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를 좌우할 입법·정책 결정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은 기후 변화로 당연시하던 일상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실감한 한해였다. 1973년 이래 한국의 가을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따듯한 가을과 초겨울 뒤엔 기록적 폭설이 찾아들었다. 마치 앞으로 더 위력적인 재앙이 다가올 거라는 섬뜩한 예고처럼 말이다. 이렇듯 기후 이슈는 당장 해결해야 할 절박한 위험이다. 하지만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것이 바로 ‘기후 변화를 얼마나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감각, 기후 감수성(Need for Climate Sensitivity)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몇 년 동안 기록적인 폭염과 홍수, 대형 산불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기후 감수성, 그것은 ‘끓는 시대’로 접어든 지구의 환경과 나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전문가들 역시 앞으로 철학을 기초로 한 ‘기후 정의’가 재정립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기후 위기 심각성에 공감하며, 사진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중구문화재단의 CCPP(Climate Change Photo Project) 두 번째 기획전시의 주제는 ‘The Glorious World’ 장엄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직도 태고의 모습처럼 아름다움을 간직한 세상으로 시작되는 전시는 문명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미명 아래 파괴되어 가는 복잡한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요한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당도하게 된다. 절박한 기후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움’ 말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택한 이유는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The Glorious World’ 여기 전 세계를 누비며 아름다움에 관한 거대한 담론을 펼치는 네 명의 사진가가 있다.

 

하지가 되면 24시간 낮이 머물고 동지엔 24시간 밤이 계속되는 북극. 그곳을 탐험하는 이들의 모험에 푹 빠졌던 어린 소년은 훗날 사진가가 되어 태고의 모습을 닮은 북극의 경이로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유명 사진가 라그나르 악셀손Ragnar Axelsson은 무려 4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Arctic _ The Edge of the World>, 세상의 가장자리인 북국을 기록해 오고 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조화롭게 살아가는 북극 사냥꾼들을 담던 그의 작업에 변화가 생긴 건 30년 전부터였다. “거대한 얼음이 병들었어.” 친구처럼 지내는 사냥꾼의 걱정은 현실이었다. 한때 얼음으로 뒤덮인 넓은 바다와 빙하가 점점 사라졌고, 길게 펼쳐진 빙하 위를 이동하던 사냥꾼들의 모습도 예전처럼 쉬이 찾아볼 수 없다. 악셀손이 포착한 그곳은 아직도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일상이 교차되는,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태고의 아름다움을 붙잡아 달라는 절박한 북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고 있는 북극여우에 고목 위에 평화로이 걸터앉은 판다까지 누가 봐도 멸종위기 동물들의 초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사진가 마르코 가이오티 Marco Gaiott의 작업에서 꼭 주인공을 논해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동물이 아닌 그들이 사는 서식지다. 그는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 서식지 <Shrinking Habitats> 작업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서식지’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가이오티는 에티오피아의 외딴 산악지대에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밀도 깊은 숲에서 그리고 북극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쳐 점점 사라져가는 동물들의 서식지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이 서식지들은 단순한 동물들의 주거 공간이 아닌 우리가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소중한 지표가 된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동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소중한 피난처지만 언제든 무자비하게 닥쳐올 위기가 숨겨져 있어 더 애처롭게 아름답다.

 

1960년대 먼지만 날리던 무역지대에 불과했던 두바이는 불과 몇십 년 만에 꿈의 도시, 세계적인 관광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경제적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로 홍보되는 이곳은 거대한 쇼핑몰과 인공섬에 마천루까지 인간이 구현해낸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차고 넘친다. 매그넘 사진상과 세계언론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닉 하네스Nick Hannes의 환희의 정원 <Garden of Delight>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뒤에 가려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재조명한다. 사막에서 스키를 타고 돌고래와 수영을 하는 그들만의 환희의 정원, 두바이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지극히 평화롭던 자연환경의 희생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인공섬과 대형 건축물들을 위해 많은 양의 모래가 채굴됐고, 바다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해양 생태계의 서식지는 사라져버렸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지만 해수면 상승과 해안침식, 환경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이곳에서 하네스는 아름다운 두바이의 모순과 현실을 고백한다.

 

미국의 사진가이자 예술가인 크리스 조던Chris Jordan은 이번 전시를 통해 두 가지 맥락의 ‘아름다움’을 담은 <Beauty Emerging>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첫 번째 시리즈 숫자를 따라서(Running the Numbers)는 대량소비와 환경문제에 관한 구체적 수치의 이미지화를 통해 인간의 무감각을 일깨운다. 수천 이상의 단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인간의 뇌, 수백만, 수십억 개라는 대량소비와 관련된 숫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는 환경문제를 구체적 숫자로 드러내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조던의 최근 시리즈인 ‘황홀한 폐허(Ecstatic Desolation)는 세상이 점점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느림의 미학‘이 머무는 아름다운 풍경에 해답이 있음을 전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되돌리고 삶을 치유하며, 잃어버린 자연과의 균형을 되찾게 해줄 ’아름다움‘이 그의 작품 속에 녹여져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풍경부터 인간의 손길로 변화된 풍경까지, 지구는 수많은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서사의 장이다. 우리는 그 거대한 세상에서 더 이상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이상적인 태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현재 지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후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CCPP 두 번째 기획전 ‘The Glorious World’에서 사진가들은 우리가 가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 깊은 곳의 서사를 들려주며 기후 위기의 절박함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지구와 함께 존재하며 연결되어 있음을 들려준다.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단지 속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 동물이 서로 공존하며 조화롭게 살아갔던 삶의 방식을 떠올리고 기억하며 새기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을 일깨우고 지구에 대한 관심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 속에서 깊은 치유의 에너지와 희망의 길을 발견하길 바란다

 

 

석 재 현 ㅣ 2025 CCPP 예술감독

 

기획자 석재현은 국내를 비롯한 해외의 여러 사진페스티벌과 뮤지엄의 사진전 기획은 물론  영국 Earth Photo Awards를 비롯한 해외의 권위 있는 사진상과 포트폴리오 리뷰의 심사위원으로 사진예술의 성장과 확장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는 부산국제사진제 감독으로 기후 위기와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다루었고 2023년부터 기후변화사진프로젝트CCPP 예술감독으로 선정, 글로벌 이슈인 기후환경 위기를 사진예술과 접목한 전시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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